2009년 01월 07일
OJ the prolog - 5
“수고하셨어요.”
단순노동이지만, 일일이 손이가는 번거로운 장부들을 정리하고나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가 있었다.
“이런 페이스라면 이일도 곧 정리될듯 하네요. 역시 일손이 하나 늘어나니 이곳도 나름대로 제몫을 하게 되는것 같은 느낌이네요.”
“예? 그정도로 사람손이 부족했나요? 저 이외에도 몇분더 계실거 아녜요.”
나의 반문에수녀님은 자그맣게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자세하게 답해주었다.
“그게 지금, 이 부지에 관계자는 저랑 주교님과 지금 신부님까지 합해채 열명도 되지 않아요. 그와중에 네분이 각자 업무적 사정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셧구요. 그 때문에, 지금 교회의 정상적인 운영은 커녕 관리조차 버겁답니다.
우선은 신도님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해나가 보고는 있지만, 이런 장부나 서류같은 중요한 것은 전혀 도움을 받을수없으니, 일손이 부족할수밖에요.
하아, 정말이지 쓸데없이 넓기만 하다니깐요. 이 교회.”
수녀님, 왠지 불경스러운 말씀이네요.
투덜대는 수녀님의 말에 그저 하하핫, 하며 쓰게 웃음 지을뿐이었다.
“그러니깐, 각오해두세요. 일단락 될 때마다 일거리가 두배, 세배로 밀려들어올테니깐요.”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에 명암진 얼굴로 짐짓 무서운 수녀님의 협박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라 버렸다.
그러고 보니 교회에 정원이라던가 하는것도 있었고, 아이들이 몰려드는것도 있었고, 게다가 나름대로 교회의 구색은 갖추어 있어서, 고해라던가 하는 업무까지 하는것 같았는데...
정말이지 할건 다하는 교회구나. 게다가,
“허억!!”
그것은 갑자기 머릿속을 비집어 나왔다.
갑작스럽고 생소한 충격에 머릿속이 새하얘져 버렸다. 나는 그것을 버티지 못하고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머릿속엔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하나가 의식속의 깊은 심층 아래에서 부상했다.
“...? 신부님 갑자기 왜그러세요?”
“실은, 갑자기 의문점이 하나 생겼는데 말이죠, 수녀님.”
“예, 의문점이요? 뭔데 그러시는데요...?”
“그러니깐, 저는 아침부터 하루종일 서류와 씨름을 하고있었죠?”
“네, 확실해요. 제가 내내 지켜보고 있었으니 착오는 없어요.”
“그렇군요, 그래요. 그런데... 그러고보니, 수녀님은. 하루종일... ”
나의 말끝이 흐려짐에 따라 수녀님의 얼굴은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수녀님은...”
“...네?”
“수녀님은...”
“수녀님은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했어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호러!)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귀곡성)
“그래서 더 할말은?”(웃음, 혹은 무표정)
“없어요.”
“그럼 신경끄고 일이나 해요.”(웃음, 혹은 무표정)
“네.”
......
........
...........
일도 거의다 끝난마당에 지금와서 왈가왈부 해봤자, 뭐...
이제와선별 상관없는 생각을 지워내 버리고 서류정리의 막바지에 신경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쯤 가야 좀더 신부다운일을 할수있게되는걸까?”
숫자와 씨름하는 도중, 한탄섞인 한숨이 비져나오는 것 까지막는건 조금 무리였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네, 그럼 안녕히...”
끼익, 탕.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성당의 출입문이 닫혔다. 오늘도 하루의 일과가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집에 가는거다.
-시장의 타임서비스.(선택)
“이대로라면 5시의 타임서비스까지는 시간이 여유있겠는걸?”
어제도 시장에 가긴했지만 대부분 소연씨 들러리만 했을뿐, 정작 중요한 내일 먹을반찬거리조차 제대로 사두지 않았더니, 내일 아침 반찬은 커녕 오늘저녁거리부터가 걱정이다.
하지만, 어제 좋은 타이밍에 타임서비스 소식을 얻었으니, 남은것은 작전실행뿐이다.
이름하야, 풍운! 저녁거리.
오오, 좋은데? 나름대로 진지한 분위기도 있고한게, 오늘 오후는 왠지 시작부터 좋은 느낌이다.
덤벼라! 타임서비스. 오늘저녁은 메인의 된장국에 계란말이와 바삭하게 구운 김이다!!
와라! 무든 배추든 양파든, 전부 베어주마!!
피식피식, 실소가 배어나오는것을 참지못하고 인상을 일그러뜨리는 한 신부가 길을 걷는다.
근처에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기분나쁜걸 봐버린 표정으로 슬슬 피해가겠지만, 다행히 근처에 사람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이곳에 있는건 나 혼자뿐이었다.
“앗차차, 얼른 시장에 가야지.”
괜히 혼자서 하이텐션한 기분으로 쓸데없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추스렸다.
상당히 여유롭다고는 하지만, 세월아 네월아 할만큼 넉넉치는 않은 시간이니, 늦지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조금 일찍 움직여야지.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스하다.
기분좋은 바람에 뭉게구름은 형태를 바꾸어 나가며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해는 서서히 기울어 가기 시작해, 이제 곧 하늘은 주홍빛으로 물들어가겠지.
구름위를 올려다보며, 팔을 크게뻗어 주욱-기지개를 폈다.
온몸이 길게 늘어져 상쾌했다.
오늘은 왠지 기분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은 저녁. 그런 느낌이 그, 어느때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웅성웅성)
꽤액, 누군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찍어 누를때 내는 소리.
우윽, 이것역시 누군가가 발등을 밟았을때 내는 소리.
우그그그그. 그밖에 어깨나 팔꿈치나 하는 흉기로 가엾고 굶주린 신부하나를 뭉개는 소리.
으갸갸갸갸갸갸. 이줌마들이 정말!!
밀지마요 밀지마, 거기 아줌마! 잠깐, 으악! 이대로 가다간 짜부라진다구요. 우왓! 깔린다! 갈린다구! 이대로 가다간 믹서기에 끼인 콩처럼 갈려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분노)
시장에 막 도착했을때 주위는 한산했었다.잠시나마 ‘내가 너무 일찍온건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사람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생각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인파는 하나둘 몰려오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밀려들어오는 검은 물결어느정도 사람이 찼을 즈음 이제 사람도 거의다 찼고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건가? 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었다. 검은 인파는 끝도없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그것도 현재진행형으로)
그덕분엔 꽤 앞줄의 아줌마들은 물론 그틈에 끼여있는 나까지...
“우그그그... 아줌마, 밀지좀 마세요~ 이러다간 앞줄찌그러져요.”
내 불만섞인 말에 뒷줄의 아줌마가 말했다.
“에구구구 미안혀 신부총각.근데, 이거도 내가 미는게 아니라, 자꾸 뒤에서 미는게... 에구구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뒤에 얼마나 많길래 이렇게 밀어대는...”(웅성웅성)
묵념. 엄청난 장사진입니다.
엄청난 인파.
이근방 상점가, 아니. 이근처 동네의 아줌마라는 아줌마는 전부 몰려온듯한 이 상황은 어찌된거란 말인가.
“줄을 서세요, 줄. 아! 거기 아줌마 새치기 마세요. 뒤에서도 밀지마시구요! 수량은 넉넉하니깐 조급해 하지마시고 질서를 지키세요, 질서를. 예예. 조금마 기다리시면 초특급 타임서비스 시작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까의 내뒤에서 말을 걸어온 아줌마가 조금은 신경질적인 말투로 투덜거였다.
“오늘, 계란이나 몇줄 사러왔는데, 갑자기 왠줄이람? 덕분에 끼여서 옴짝달싹 못하고, 이게 무슨 난리야?”
아줌마.
“게다가 이근방 사람들이란 사람들은 거의 다 모여서. 약장사 구경때도 이렇게까지 안모였었는데, 무슨 구경거리났나?”
아줌마, 왠지 전 알것같아요.
“신부총각? 신부총각은 뭐때문인지 알아?”
“오늘, 계란...”
“응? 뭐라고 신부 총각?”
전단지에는 여러 가지의 타임서비스품목이 적혀있었다. 그중에는,
“오늘, 저녁은 계란말이가 참 좋겠죠?”
“아, 아? 왜그래 신부총각? 갑자기 무슨...?”
아줌마 실은,
오늘 계란이... 한판에 990원 이걸랑요...
“우훗, 우후후후후후훗...”
나말고도 주위에서 스산한 기운이 풀풀 풍겨져 나왔다
계란 말고도 꽤나 여러 가지 품목의 물건이 30%이하의 말도 안돼는 가격이었다.
물론, 1인 1개는 기본. 수량은 약 500정도.
꽤나 넉넉하다고 할수도있다.
하지만, 희소성이 있으며, 굉장히 싸고, 시간적인 제한이라는 요소의 이 타임어택이라는 시스템은 아줌마들에게 그야말로 스트라이크 존. 그래서인지 이 일대의 거의 모든 아줌마들이 이곳으로 몰려온다. 때문에 근방에있는 모든 가구의 수를 세어본다면 500이라는 수량은 턱없이 모자른 양이다.
게다가 품목은 각 가게당 지정해놓은 딱 한가지.
이를테면, 어제의 청과상 아저씨의 파와 어물전 김씨의 생태, 그리고 과일가게 황씨의 그 외 기타 등등.
그래서 어제 소연씨는 생태와 파, 버섯이나 그밖의 것으로 생태찌개의 레시피를 공략했다.
물론 그 메뉴를 생각한것은 소연씨 하나뿐이 아니라서, 경쟁은 치열했을터지만 소연씨는 그것을 무력으로 묵살해버리고, 가볍게 파를 획득해버렸다.
하지만, 나는 교회의 신부. 무력이라던가 치열한 경쟁의 몸싸움을 벌였다가는 “글쎄, 교회의 신부님이 어쩌고 저쩌고...” “글쎄, 7동의 김씨를 어쩌고 저쩌고...” 하는둥의 동네 아줌마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것이다.
그것은 교회의 이미지 관리로서 최악,그래서 이쪽은 무력보다는 스피드로 승부를 봐야 한다.
최소한의 동선과 최소한의 레시피로 몇가지의 확실한 식재료들을 확보. 주재료들을 최우선으로 확보한후, 곁가지의 보조 식재료는 보통의 값으로 지불. 하는 방법이 있다.
소연씨와 같은 방법은 인원도 홀로이고 혼자서 식사하는 나에게는 적합 하지 않다.
대량으로 사들이는건 소연씨 같은 사람들의 몫이다.
타임서비스에서 세일품목인것들만 노렸다가 겨우 하나, 둘정도밖에 사지못해, 나머지 재료들을 어쩔수없이 다른곳에서 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고 한다. 그렇게 실현하기 힘든 목표는 정하지 않는다.
몇 개의 소량의 재료는 정가로 산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주 메뉴들의 재료는 확실하게 확보한다.
오늘의 필승전략이다.나의 최우선 공략목표는 계란! 무려 70%세일이다.그다음은 시금치와 양파, 어제에 이은 파다.시금치는 반값. 양파와 파는 어제보다 조금 올랐다. 김은 세일하지않는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품목이있지만, 계란말이와 된장국에는 필요없는 품목이니 배제한다.그밖에 필요한것들은 정가에 팔지만, 소량이니 무시해도 될 정도이다.
m그리고 약간 힘들겠지만, 35%세일 하는 햄이라던가, 통조림의 45%세일, XXX빵의 반값 세일도 나쁘진 않다.
무엇보다도, 이 마켓 배틀에서의 생명은 과감한 결단력과 빠른 속도. 이 두가지에 좌우된다. (소연씨같은 괴수는 제외다.)
마지막 수량 하나에 울고웃는 전투. 저녁메뉴의 선점을 둘러싼 아줌마들의 전쟁은 실로 고독하고, 잔혹하며, 처참한것이다.
“그럼 시장가의 명물 15일장 타임서비스입니다. 오늘은 마지막날로 오늘이 끝나면 다음 15일장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자아, 그럼 15일장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지켜야할 몇가지 규칙사항에 대해 말씀드리겟습니다.”
-꿀꺽.
규칙을 설명한다는건 타임소비스가 앞으로 10여분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일종의 암묵적 신호다.
“첫째, 두번서기및 새치기와 같은 부정행위는 일체 금합니다. 적발시 두달동안 타임서비스를 이용하실수 없게 됩니다.
둘째, 여러 가지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장내에서는 일반적으로 달리시면 안됩니다. 이것 역시 적발되면, 두달동안 타임서비스를 이용하실수 없습니다.
셋째, 충격에 상하기 쉬운것들의 물품 구입후 다른분들과의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판매이후의 물건의 손상에는 판매자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규칙의 설명이 끝날수록 웅성거림또한 잦아들고, 그에 비례해 사방에서 묵직한 기운들이 등뒤로 퍼져나갔다.
여기저기서 꿀꺽, 하며 침넘기는 소리가 들려오고,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주위에 대한 견제, 그리고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압박도 잊지 않는다.
“일곱째, 장내에서 커다란 분쟁이나 소동은 금합니다. 소동이나 분쟁은 다른 주부님들께 상당히 폐가 되므로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즐겁고 알찬 15일장의 타임서비스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요란한 사이렌이 크게울렸다.
저벅저벅-
아무런 말소리 없이 고요한 와중에 오로지 발을 내딛는 발자국 소리만이 지축을 울렸다.
모두의 얼굴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침묵된 표정.
드디어 시작이다. 저녁메뉴들의 치열한 쟁탈전. 생사를 넘나드는 마지막 날의 배틀마켓이.
“세일중인 양파와 파는 매진됐습니다.”
청과상의 아저씨가 큰소리로 매진상황을 알리며 뭉쳐있는 인파를 흐트러뜨리기 시작했다.
“아차, 늦었네. 바로 앞 몇줄전에 다팔리고 말았네.”
아쉽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아줌마들이 청과상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 아슬아슬했다. 바로 내 뒷줄에서 매진이 되어버렸으니깐,
(오만)
“시금치 매진 임박입니다. 싹 싱싱한 시금치의 수량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시금치 코너에서의 상황통보가 귓가를 날카롭게 자극했다.
놓치지 않는다, 된장국 재료오오!! 누구에도 넘기지 않아!! 저건 내꺼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탐욕)
“햄코너 방금 매진 되었습니다.”
...늦었다, 햄이. 햄이...
다, 팔렸다...
무릎에 힘이풀려 그 자리에서 주저 앉...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허탈감이 전신을 강타하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이야이야, 조금만 늦었으면 못살뻔 했네. 다행이야~”
저 아줌마는, 햄. 샀구나...
(질투)
양손가득 전리품을 들고가는 도중, 낯익은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어머, 안녕하세요? 여기서 또 뵙네요?”
“아, 어제의 그?”
상점가의 수수께끼 자매중 언니쪽에 해당되는 그녀가 내 옆에 서있었다.
“오늘도 장보셧나요?”
“네, 오늘이 세일 마지막 날이어서 그런지 예전보다 많이 샀어요.”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가득찬 봉투를 슬쩍 들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 같이있었던 동생쪽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옆에 아무도 없네요, 혼자나오셨나봐요? ”
“아아, 오늘은 잠시 바람이나 쐬면서 주위좀 돌아다닐겸, 같이 산책중이었어요.”
음? 같이 산책중이라니, 누구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덥썩.
“으갹!”
종아리를 가볍게 무는 아픔에 깜짝 놀라 발밑을 보니, 갈색의 녀석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강아지?”
“네. 집안정리를 해야한다고, 도와준다고 했지만 혼자가 더 편하고 효율도 좋다면서 잠시 밖으로 산책이라도 다녀오라고 하더라구요.”
아마, 동생의 이야기일것이다.
“집안정리요? 봄날 대청소라면 그래고 같이 도와주시는게...”
“대총소 같은게 아닌데다가, 위험하다면서 억지로 내쫒아내더라구요.”
대청소가 아닌데다가 위험해? 무슨일이라도 생겼던걸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나를 보고, 그녀는 그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불순한 변질자가 어젯밤 지붕을 뚫고 집안으로 침입해 왔었거든요. 상당히 질나쁜 악의를 품고 쳐들어와서, 가구라던가 이런것 저런것들이 꽤나 어지럽혀졌거든요. 몇개 깨진 파편도 있어서 ‘덜렁거려 다치느니, 차라리 다른걸 도와주는 게 더 나아요.’라면서 억지로 내쫒겼어요.”
“괜찮으세요? 집안이 난리날정도였다면...”
“네, 괜찮아요. 어제 이 아이 덕분에 그 변질자도 도망쳤으니, 앞으로 별일 없을거예요. 누구하나 크게 다치거나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예요.”
대견하다는 손짓으로 갈색강아지를 슥슥 쓰다듬는 그녀의 모습에 걱정같은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누구하나 다치지않고 원만히 해결됐다는 느낌이 들어,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대견하네요, 이녀석.”
다소곳이 앉아 강아지를 쓰다듬는 그녀처럼 나도, 강아지를 쓰다듬었다.
-덥썩
물렸다.
제대로 물어버렸다, 이녀석.
장난이고 애교고 하는 레벨을 떠나, 전심전력을 다해 내손을 물어버렸다.
“으아아아아아~”
녀석을 떼어내보려 손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지만,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린채 흔들거리기만 할뿐 떨어질 생각을 하지않는다.
“버릇없이! 그럼 못써.”
그녀가 내선에 매달린 녀석의 목덜미를 한손으로 붙잡고,
콩, 하며꿀밤을 한 대 먹이자 그제서야 물고있던 내손을 놓아주었다.
“죄송해요. 평소엔 얌전한 아이인데, 오늘다라 왜 이러는지...”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는 그녀에게 “괜찮아요”라고 말해 진정시켜주었다.
확실히 물렸을 당시 아프긴 했지만, 손을 보니 긁히거나 피가 나올정도의 상처는 없었고 그저, 물린자국이 아릿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저 때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것 같은데, 늦거나 하지는 않으셨어요?”
주홍에서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은 해가 서쪽지평선으로 모습을 감추자 옅은 남색을 띄며 서서히 어두워져 가고있었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슬슬 가봐야겠네요. 그럼 이만...”
“네.”
그녀는 조용히 미소지은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는 왔던길을 되돌아 걸아나갔다.
“아참! 하바터면 깜박할뻔 했네요.”
잊고있었던것을 생각해낸걸까, 그녀가 빙글하고는, 뒤로 한번 돌아섰다.
“불순한 변질자가 이 동네를 배회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아무쪼록 조심하세요. 그 변질자 상당히 과격할지도 모르니깐요. 어쩌면 이 근처에서...”
사악, 하고 그녀의 얼굴에 명암진 그늘이 생기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다음의 희생자를 물색할... 아니, 이미 다음의 희생자를 정해놓고 조용히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르죠...”
“노, 농담이라면 조금 지나친걸요.”
“어머, 그런가?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일뿐이니 그렇게까지 신경쓰지마세요.”
다시, 본래의 밝은 미소로 돌아와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이번에야 말로 진짜 안녕이예요. 바이바이~”
“네, 그럼 바이바이~”
조용히 발을 내딛으며 걸아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늘하늘한 분위기의 그녀의 행동과 조금은 특별한 그녀의 모습. 그리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묘한 매력.
그러한 생각에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만을 멍하니 바라볼뿐이었다.
해가진 저녁의 싸늘한 봄바람이 검은 수단을 거칠게 펄럭였다. 옷깃으로 스며드는 한기에 고개가 절로 움츠러들었다.
“꺄악- 바람!”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놀라, 움츠러뜨렸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시선의 끝. 그곳엔 세찬 바람의 광포한 펄럭임이 일었다.
가녀린 손가락으로 바람을 눌러보려 하지만, 강하게 올라오는 그 힘에 속수무책일뿐이었다.
“... ...”
얼굴이 붉어지고,
시선을 급히 다른곳으로 돌렸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고개를 몇 번씩이나 흔들어 떨쳐내보려 했지만, 망막에 새겨진 영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거칠게 펄럭이는 치마사이로 새어나오는... 순백의... 하양. (푸릉...)
봄바람은 꽤나 장난꾸러기. 라고 생각했다.
# by | 2009/01/07 07:47 | Over Justice | 트랙백 | 덧글(2)























